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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공연.전시.축제/대성동고분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 무덤👑 '대성동고분군' 비밀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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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소개 ]

 

김해시는 2001년부터 가야문화환경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대성동고분군을 정비하고 2003년 8월 대성동고분박물관을 개관하였습니다.

이웃한 국립김해박물관이 가야 전체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면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의 무덤인 대성동고분군을 대상으로 하여 보다 특화된 전시를 구성하였습니다.

이후 대성동고분군에 대한 학술발굴조사가 꾸준히 진행된 결과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최신 발굴 자료들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열린 박물관으로 다가가고자 노후화된 박물관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2017년 5월 재개관 하였습니다.

 

 

 

[ 관람안내 ]

 

관람시간 - 오전9시~오후6시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가능

휴관일 - 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 무료

 

 

[ 전시안내 ]

 

대성동고분군의 사적 지정구역을 1990년 6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경성대학교 및 대성동고분박물관에 의해 9차례 발굴조사가 실시되면서 고분군에 대한 비밀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고분박물관 가는길에

야외전시관도

구경해 볼 수 있어요

 

 

 

 

 

대성동고분박물관 전경

 

 

 

 

 

 

따라 들어오세요

 

 

 

 

 

전 시 안 내

 

 

 

 

 

대성동고분군 모형전시 및 미디어꼴라쥬 등을 통해 금관가야사와 시대별 발굴현황 및 배치 정보 등 기본적 이해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대동여지도의 고김해만

 

 

 

 

 

고 김해만의 중심, 애구지

 

 

 

 

 

김해의 과거와 현재

 

 

 

 

 

'수로왕 이전의 무덤, 대성동 고인돌'

 

김해시 중심부는 북서쪽의 경운산, 동쪽의 분성산, 남쪽의 임호산 등 구릉성 산지들로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해반천을 기준으로 동.서로 양분된 김해 시가지 일대의 무문토기시대 유적 분포 현황을 살펴보면 경운산의 남사면 끝자락에 위치한 내동고인돌과 해반천 서쪽 저지대에 위치한 구산동고인돌을 제외하면 모두 해반천의 동쪽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특히 도로시설 확충, 주택 개발로 인한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결과 해반천 동쪽일대는 주거지, 환호, 경작지 등 다양한 무문토기시대 유적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2014년 대성동고분 9차 학술발굴조사에서 드러난 고인돌1호는 금관가야의 무덤영역으로 알려졌던 애구지가 무문토기시대부터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대성동 고인돌 1호는 애구지 정상부에 위치하며 2단으로 땅을 팠다.

무덤칸의 뚜껑들은 7개의 편평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매장구조는 덧널모양이다. 내부에서는 붉은 간토기 1점과 화살촉 28점이 출토되었다

 

 

 

 

 

 

대성동고분군에서는

71기의 널무덤이

조사되었다

 

 

 

 

 

금관가야의 무덤은 널무덤->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돌방무덤의 형태로 변화하는데 이러한 무덤의 변화를 통해서 고대사회의 생활상과 문화를 살필 수 있다.

9차례의 대성동고분군 발굴조사를 통해 구릉의 능선부에는 금관가야의 지배자들 무덤이 발견되었고, 구릉의 주변저지대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무덤이 위치해 있다.

 

 

 

 

 

시신이 매장된

으뜸덧널과 유물이 부장된 딸린덧널

 

 

 

 

 

'대성동 88호분 순장자'

 

대성동 88호분 북쪽에서 순장자 3인이 조사되었는데(아래2인,위1인) 아래에 놓인 순장자 2인은 여성과 남성으로 발치주변에는 황적색안료가 뿌려져 있었다.

위에 놓인 순장자1인은 노년여성으로 얼굴과 가슴부위에서 화살촉이 확인되었다.

3순장자 모두 신전장(사체의 사지를 펴서 눕히는 방법)을 했으며, 머리방향은 동쪽이다.

 

 

 

 

 

대성동 88호분 덧널무덤은 남북향으로 위치하고 덧널의 맞물림흔적은 'ㅍ'자로 추정된다.

도굴이 전체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봉분의 함몰토에서 청동투겁창 1점, 쇠도끼 14점, 큰항아리 1점이 수습되었고, 바닥에서 뼈화살촉군.쇠화살촉군, 덩이쇠 4점, 가지창 1점, 바람개비모양 청동기 13점, 금동허리띠, 은.동제칼집장신구, 가락바퀴모양석제품 2점, 원통모양청동기 3점, 토기 5점, 옻칠흔 등이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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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의 말갖춤'

 

널무덤에서 출토된 말갖춤새로 볼때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최소한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말이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대선동고분군에서 출토된 말갖춤새 가운데 중국에서도 출토된 사례가 없는 장식말갖춤새가 확인되는 사실로 볼 때 금관가야가 적극적으로 대륙의 문화를 수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나아가 철로 모방 하거나 개량화하여 발전시킨 말갖춤새들은 금관가야문화의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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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골로 본 금관가야인'

 

예인리 고분군은 가야권역에서 가장 많은 인골이 조사된 곳이다.

여기서는 남방계와 북방계의 형질이 함께 확인되었으며, 편두 인골도 확인되었다.

예안리 남성의 평균신장은 164.7cm, 여성의 평균신장은 150.8cm이다.

대성동고분군은 도굴로 인해 무덤의 피장자가 아닌 순장자에 대한 형질분석만이 가능하다.

순장자는 예안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편두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성동고분군의 평균신장은 남성의 경우 155.7cm, 여성은 150.8cm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관가야의 무사'

 

금관가야의 무사갑옷은 철판을 재단하여 만든 판갑과 작은 비늘모양의 쇠조각으로 구성된 비늘갑옷으로 구분된다. 갑옷의 부속구로는 목가리개, 허리가리개, 팔가리개 등이 있다. 또한 쇠투구도 갑옷과 세트를 이루면서 출토된다. 갑옷과 투구는 북방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상위계층의 전유뮬이었다.

 

 

 

 

 

대성동 고분의 순장

 

 

 

 

 

즐거운 김해여행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행하는 영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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