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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연.전시.축제/한국신발관

👠국내 신발의 변천하여 온 과정을 기록한👟 '신발역사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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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신발. 세계신발. 한국신발연대기. 유명인신발. 신발VR체험. 커스텀빅이슈. 신발속직업 등에 관련하여 다양하게 전시가 되있다

 

 

 

 

한국신발관 2층 신발역사관

 

 

< 용도와 형태, 재료에 따른 각양각색 '신' >

 

신의 어원은 [양서]와 [남사] [제이전] 신라조에 화를 '선'이라 한 기록을 근거로 '선 ->신'의 표음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있다. 신은 형태와 재료,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며, 이름도 여러가지이다.

사냥을 많이 하여 짐승의 가죽이 풍부하고 자주 말을 타야 하는 수렵문화의 북부지역에서는 가죽신을 발전시켰고, 말을 적게 타고 벼농사를 하는 남쪽 지역은 풍부한 짚으로 만은 짚신을 발전시켰다.

또한, 추운 북방문화에서 장화처럼 긴 신발을 화라고 하였고, 기후가 따뜻한 남방문화에서 발달 된 목이 짧고 운두(둘레의 높이)가 없는 신발을 '혜' 또는 "리"라고 하였다. 왕과 왕비의 신은 석이라 불렀다.

제작재료에 따라서는 초, 마, 삼등의 식물성 재료로 만드는 짚신과 미투리가 있으며, 놋쇠로 만드는 유혜, 나무로 만드는 목극, 종이로 만드는 지혜, 비단으로 만드는 운혜, 당혜, 가죽으로 만드는 흑피혜.태사혜.녹피혜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용도에 따라서는 마른신,진신 등으로 분류된다. 마른땅에서만 신는신으로는 남자용의 태사혜, 외코신, 뒷발막 등과 여자용의 당혜, 백혜, 운혜, 외코신 등이 있다.

우천 시와 진 땅에 신는 진신은 나막신이 대표적이며 놋쇠로 만든 놋갓신과 기름에 담가 만든 유혜 등이 있다.

 

 

 

 

 

신발 VR체험관

 

 

 

 

 

 

 

 

< 신발유통관리 >

 

신발유통관리는 시장의 동향을 고려하여 신발 상품기획, 유통망관리, 영업활동관리, 고객관리, 물류관리, 공급처관리 등의 신발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유통활동이 능률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조정하고 통제하는 일이다.

 

관련 민간자격증으로는 '슈피터', '페도디스트' 가 있다.

 

슈피터 - 다양해지는 슈즈제품의 특성을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유행과 트랜드를 읽는 눈과 소비자의 다양한 구매욕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

 

페도디스트 - 신발 관련 연구소, 기능성 신발 관련업체, 스포츠 족부 관리분야, 의료보조기 디자인업체 등으로 진출, 기능성 신발 및 인솔제작.판매하는 사업체 운영가능.

 

대개 의지보조기구 및 기능성 신발 부속품등을 만드는 회사에 소속되어있거나 개인사업자 형태로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소아과, 한의원 등 족부클리닉이 개설된 병원과 연계하여 일을 함.

 

 

 

 

 < 신발생산 >

 

신발생산은 확정된 견본에 근거하여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생산준비과정에서 만들어진 금형, 발형, 자재를 이용하여 재단, 갑피제작, 제화과정을 거쳐 완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관련 민간자격증으로는 '신발류제조기능사' 가 있다.

 

신발류제조기능사 - 인체공학적 측면과 작업능률성 및 원가절감측면을 고려하여, 신발의 모형을 디자인하고, 신발에 적용되는 모든 자재 물성 및 관리업무를 수행합니다.

 

밑창의 제조, 재단, 재봉, 제화의 과정을 거쳐 각종 형태의 신발을 제조하는 업무를 합니다.

 

 

 

 

 

벗과 나누는 우정은 인생을 더욱 즐겁고 힘차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큰기쁨이 찾아왔을때 자신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는 벗, 일상의 소소한즐거움에 함께 미소짓는 벗이 곁에 있으면 그 기쁨과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일도, 공부도, 운동도, 지쳤다." "관두고 싶다." 고 생각할떄 "지지마라!" "힘을내라!" 라고 응원하는 벗이 있으면 기운이 솟아 오르는 법입니다. 여러분 곁에서 희로애락의 인생을 함께 걷고 있는 신발.. 여러분의 소중한 벗이 될 수는 없을까요?  [출처 : 한국박물관 '벗신을 소개합니다"]

 

 

 

 

 

 

 

'1987' 영화 찍을 때 신던 신이랍니다

 

 

 

 

 

11. 북아메리카 전통신발 /캐나다 : 카믹 / 머크럭&설피

 

북극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이 신는 장화로 주로 물개가죽이나 순록의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이뉴잇부츠라고도 한다.

 

종족이나 사냥동물에 따라 재료나 디자인의 차이가 나타난다. 

 

 

 

 

 

12. 북아메리카 전통신발 / 미국 : 카우보이부츠&박차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신어서 웨스턴 부츠라고도 하며, 굽이 약간 높고 말을 타기에 적합하도록 고안되었다.

 

말을 탈때  부츠의 뒤꿈치에 박차를 부착하기도 한다. '박차'란 카우보이 부츠에 착용하는 도구로 작은 톱니바퀴가 붙어 있어 말을 부릴때 이것으로 말의 배를 툭툭차서 신호하는데, 일의 진행이 빨리 되도록 힘을 더하는 것을 "박차를 가하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6. 유럽전통신발 / 네델란드 : 크롬펜

 

나무로 만들어진 네델란드 나막신이다. 네델란드는 땅이 낮아, 습기가 높아서 예로부터 습기를 방지해주는 나막신을 신었다. 수백 년의 전통이 있어 모양을 보고 어느 지역 출신인지 가늠할 만큼 여러 종류가 있다.

 

 

7. 유럽전통신발 / 러시아 : 발렌키 부츠

 

양털을 펠트화시켜서 모양을 만든 러시아 전통 겨울장화이다. 눈위를 걷는데에 편리하고 따뜻한 신으로, 마을사람들 사이에 널리 보급되었다. 양털을 압착해서 만든 10mm가 넘는 천연소재펠트는 맹추위에서도 견딜 수있고 방수와 통풍, 땀 배출이 우수하고 건조하기도 용이하다.

 

 

 

 

 

13. 북아메리카 전통신발 / 미국 : 인디언 모카신

 

인디언이 사슴사죽으로 만든신발이다. 원형은 1장으로 된 털가죽을 발바닥에 걸쳐 보자기로 푹 둘러싼 것과 같이 싼 뒤 가장자리 부분에 드문드문 작은 구멍을 뚫고 가죽끈을 꿰어  발목을 묶어놓은 모양이다.

 

 

14. 중.남아메리카 전통신발 / 멕시코 : 허라취

 

굽이 낮고 모든 소재를 가죽으로 만든 샌들이다. '허라취'는 멕시코의 원주민 언어로 '샌들'이라는 단어이다.

1930년부터 폐타이어를 밑창으로 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졌다. 

 

 

 

 

 

2. 아시아전통신발 / 중국 : 전족

 

어린소녀나 여성의 발을 인위적으로 묶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풍속으로 10세기 초부터 20세기까지 약 1,000년간 지속된 풍습이다.

3~6세의 여자아이는 가로 10cm, 세로 2~2.5cm 크기의 헝겊을 발에 동여매고 엄지발가락 이외의 발가락을 발바닥 방향으로 접어 넣듯 묶어, 조그만 신에 고정한다.

 

약 10cm 길이의 발을 이상적으로 여겨, 성장한 여성의 발은 변형이 심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족을 하면 종종 발끝으로 걸어야 했고, 등뼈가 기형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서 있는 자세도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습이 당시에는 인기있는 여성상이었다.

 

 

 

 

 

4. 아시아전통신발 / 티베트 : 부츠

 

티베트의 동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높은 고개에서는 척박한 기후 탓에 한여름에도 눈을 만날 수 있어 무릎 밑까지 올라오거나 발목만 덮는 부츠 형태의 신발을 신는다.

약600년이 넘은 이러한 형태의 신발 기원은 현재 티베트 암도지역의 한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전통신발은 티베트지역에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장 큰 특징으로는 신발의 좌우가 구분되지 않고 대체로 화려한 느낌을 갖고 있다.

 

 

5. 유럽전통신발 / 그리스 : 트사로키아

 

털방울 장식이 달린 형태의 신발로 기원은 불분명하며 비잔틴 시대의 튀르크족을 비롯하여 이웃한종족이나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전에는 그리스 궁정 근위병이 신는 신발이었으나 현재에는 그리스의 여러지역에서 무도회나 축제때 많이 신는다.

그리스 군대의 정예 보병대들은 코 부위에 울로 된 큰 털방울속에 날카로운 칼날을 숨겨 육박전에서 사용하였다.

 

 

 

 

 

3. 아시아전통신발 / 몽골 : 고탈

 

'고탈'은 우리말로 '구두'라는 말인데 버선코처럼 코끝이 뾰족하게 생겼다.

단단하고 뻣뻣한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가죽장식이 달린 굽이 없고 목이 높은 형태의 몽골 전통 부츠이다.

고탈의 발가락부분이 위로 향하게 된 데에는 몇가지 설이 견해를 달리한다. 종교적인 이유에서는, 라마승들은 '대지의 신성한 잠'을 방해한다고 하여 땅을 발로 차며 걷는것이 금지 되어 있었다.

또 다른 주장은 이러한 모양이 말안장 발걸이에 걸어 잘 풀리지 않아 말타기에 용이하다는 이유이다. 

 

 

 

 

 

자연환경이나 기후에 따라 신발의 형태가 달랐다.

 

 

 

 

 

세계 각국의 전통신발은 크게 지역 생산물, 신분이나 지위또는 계층,종교,자연환경 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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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산업 해외투자기

 

 

 

 

 

 

 < 해외 브랜드와 맞서는 우리 신발 브랜드 >

 

국내 신발업계의 프로스펙스의 국제상사와 르까프의 화승이 정상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나이키, 리복, LA기어, 아디다스 등 세계 유명브랜드  신발이 즐비한 국내 고급브랜드화 시장에서 국내 고유 브랜드 신발을 내놓고 있는 두 회사이다. 이들의 국내 내수 시장 점유율은 1위인 국제상사 29%, 2위인 화승 15%를 차지하고 있다.

[1993년 3월28일 동아일보 기사내용 참조}

 

 

 

 

 

< 교복 자율화와 신발 패션 >

 

1980년대는 경제적인 풍요와 대중문화의 폭발에 기반을 둔, 풍요로운 패션이 떠오른 시기였다.

해외스타들에 대한 큰 관심이 교복 자율화와 맞물리면서 젊은 층의 패션이 다양해졌다.

아시안게임, 88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나이키.리복.아디다스 같은 스포츠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말표신발. 기차표. 국제고무신

동양고무신 

 

 

 

 

 

< 신발 공정의 변화 >

 

1950년대까지 주 생산품이 고무신이었다면 1960년대에는 가황공정(가류가마에서 200도 이상의 열을 가하며 갑피와 밑창을 접착하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포화(canvas shoes)와 PVC를 갑피로 사용한 케미화가 주종을 이룬다.

국내 브랜드들의 제품 다각화와 제조기술 축적에는 일본 신발산업의 도움을 받았다.

 

 

 

 

 

< 고무수입 항만이었던 동천, 부산 신발산업의 주동력 >

 

부산이 신발의 메카가 된 데에는 동천이 결정적이었다. 일제강점기 부터 신발회사 절대 강자였던 고무신의 주원료인 '고무'는 전량 동남아에서 수입했는데, 고무 수입항만이 바로 '동천'이었다.

 

 

 

 

 

광복 후 부산 신발산업

 

 

 

 

 

 

SMALL

 

 

 

 

 

고무신 제작과정

 

 

 

 

 

< "살라면 사고 말라면 말고" >

 

시골장터의 고무신가게는 돈 잘 버는 명당으로 이름을 날렸다.

가게를 내기는 힘들지만 한번 문을 열었다 하면 큰돈을 벌었다.

전국민이 반드시 신어야 하는 필수품이다 보니 재고 걱정도 없었다.

유행을 타는 것도 아니고, 더더욱 썩는 물건도 아니다보니 배짱 튕겨가며 물건을 팔았다.

그 시절 고무신 장사는 눈 감고 있어도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짚신과 갖신의 비교

 

 

 

 

 

기혜 - 가무 기생들이 무대 복식에 갖추어 신던 신

 

 

 

 

 

미투리(마혜) - 삼으로 만든 고운 신으로 서민층 남녀의 신

 

 

 

 

 

은혜 - 신코와 뒤축에 구름무늬가 있는 사대부 부인들이 신던 가죽 신

 

 

 

 

 

당혜 - 신코와 뒤축에 당초문을 놓아 만든 양가 부녀자들이 신던 신

 

 

 

 

 

 < 시대별 전통 신발 >

 

고구려 무덤 벽화 속의 우리 조상들을 보면, 반장화 같은 목이 있는 신발과 목이 없는 신발을 신고 있다.

이 두가지 신발모양이 지금 까지 계속 이어졌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가죽으로 만든 신발도 신었고, 짚이나 부들, 왕골, 삼 같은 풀로 엮은 신발도 신었다. 그 밖에 금동과 청동, 흙으로 만든 신발도 있다.

고구려에서는 무사들이 말을 탈때, 바닥에 못이 박힌 금동 신발을 신었다. 그러면 말이 빨리 달려도 발이 발걸이에서 빠지지 않았다.

또 말 위에서 말을 타지 않은 적들을 발로 찰 수도 있었다.

백제와 신라의 금동 신발도 바닥에서 못이 박혀 있는데, 이것은 임금님처럼 높은 사람의 무덤에 넣어주는 신발이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신발도 옷처럼 화려했다. 귀하고 비싼 자주색 사슴가죽과 비단으로 신발을 만들었다.

또 이때 처음으로 신발에 화대를 달아 장식했다.

화대는 백옥, 무소뿔, 쇠붙이 등으로 만들었는데 백옥 화대는 임금님 신발에만 달 수 있었고 계급에 따라 화대의 재료가 달랐다.

목이 있는 신발과 목이 없는 가죽신발 그리고 짚신을 신었다. 불교나라였던 고려의 우두머리 스님인 국사는 방울이 달린, 목 없는 검정 가죽 신발을 신었다.  몸가짐을 조심하기 위해서이다.

조선시대에는 신발의 종류가 아주 많았다.

양반이 관복을 입을 때는 목화나 흑혜를 신었고 편한 옷에는 태사혜를 주로 신었는데 모두 가죽신발이다.

양반집 여자들은 가죽과 비단으로 만든 당혜와 운혜 그리고 예쁘게 수놓은 꽃신인 수혜 등을 신었다.

일반 사람들은 짚으로 삼은 짚신을 가장 많이 신었다. 짚신은 쉬 닳기 때문에 멀리 갈 때는 괴나리봇짐에 여러 켤레 매달고 갔다.

삼으로 삼은 미투리와 꼰 닥종이로 삼은 지총 미투리는 선비들도 신었는데 지총 미투리는 가볍고 질겨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선비들은 닥종이로 만든 책을 도둑맞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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