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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연.전시.축제/부산어촌민속관

우리나라 제1의 해양수산도시인 부산 어촌문화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볼수있는 '부산어촌민속관' 1전시실 - '낙동강어촌민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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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어촌문화 여행을 전시테마로 하며 '낙동강어촌민속실'과'부산어촌민속실'로 구성되어있다.

 

  [민속관 관람안내]

- 개관시간 : 09:00~18:00

- 입장시간 : 09:00~17: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 입장료 : 무료

[부산어촌민속관 전경]

부산어촌박물관 가는 길에 먹거리가 많아서 우리는 일단 밥을 먹기로 했다.

소화시키면서 관람하는것이 tip이다.

날씨는 너무 덥고 운동은 해야 하고 돈도 절약하고 이럴때는 '박캉스'를 추천합니다.

어촌박물관이라서 웬지 더 시원한 느낌을 준다.

관찰수족관안에도 들어가 보고.

1층은 기획전시실이고 먼저 2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2층으로 고고!

2층 전시실. 조용해 보이지만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꽤 있었다.

< '영남의 젖줄' 낙동강 >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경북, 대구, 경남, 울산, 부산 등 6개 광역권을 적시며 흘러내려 남해로 들어가는 영남의 대동맥이다.

낙동강 본류의 길이는 513,5km로 1,300리에 이르며 배 띄워 갈 수있는 수로는 본류와 지류에 걸쳐 1,000리가 넘으며 유역 면적은 23,860km로 남한 면적의 1/4, 영남의 3/4에 해당된다. 그리고 유역의 총인구는 1,300만 명이 넘는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영남지역의 전 주민이 낙동강 물을 생활용수, 농업용수 그리고 공업용수로 사용하고 있어 낙동강이야말로 겨레의 젖줄이요, 생명수인 것이다.

흔히들 '낙동강 700리' 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세곡 및 생산품을 실은 돛배가 강하구 지역에서 경북 상주까지 뱃길로 가는 거리가 700리였기 때문이다. 상주에서 육로로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의 남한강까지 가서 다시 뱃길로 서울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 낙동강변 선사문화유적 >

낙동강 유역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유적과 유물들이 지역마다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특히 낙동강 하구지역에는 옛날 바다였던 김해만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신석기시대 채집경제 생활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던 유적이 발굴 된 바 있다.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패총은 신석기시대 전기에서 중기, 후기에 해당하는 대규모 유적으로 확인되었으며 인근의 경마장 부지에서는 당시 해안선이 확인되었고 어패류를 잡아 모래사장에서 조리를 해먹었던 노지들 무더기가 36곳이나 발굴되어 신석기시대 생활상을 알게 해주었다.

영특이 모하노?

< 낙동강 사람들 >

수천년의 세월 속에 쉼 없이 흘러 내리는 낙동강에 기대며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모래펄에서 조개를 캐면서 항상 강물이 주는 혜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들.

< 낙동강 생태 >

낙동강은 북쪽과 서쪽으로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한강유역, 금강유역, 섬진강유역과 분수령을 이루며 동으로는 태백산에서 뻗어내린 낙동정맥과 남으로는 지리산에서 남해안을 따라 형성된 낙남정맥으로 둘러 싸여 그 중앙을 낙동강 물이 크고 작은 하천의 물을 받아 넣은 여러개의 지류를 합하여 경상도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수계를 형성하고 있는 지형이다.

< 낙동강 철새 >

낙동강 상류 인근지역에는 재두루미, 청둥오리, 큰고니, 백로, 흑로 등이, 금호강의 무태교 부근에는 붉은부리 갈매기, 황조롱이 등이 금호강하류에는 노랑부리 백로, 왜가리 등이 날아 들고 있으며, 고령군 일대에는 세계적 희귀종인 흑두루미가 찾아 들곤 한다.

 

< 낙동강 어종 >

낙동강 최상류인 태백에서 안동까지 살고 있는 물고기중 가장 많이 서식하는 어류는 버들치, 갈겨니, 피라미 등이 있다.

 

< 낙동강 식생과 수생식물 >

낙동강 상류는 물의 흐름이 대단히 빨라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달뿌리 풀 군락이 대표적인 식생이며 여뀌, 쇠뜨기 등이 산재한다,

< 구포 나루터 >

조선시대 낙동강 유역의 3대 나루터는 경북 상주의 낙동진 나루터, 경남 합천 율지의 밤마리 나루터, 그리고 구포의 감동진 나루터를 꼽았다. 감동진 나루터가 크게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수운의 요지로서 구포에 조창이 설치되면서 부터이다.

< 낙동강 유역의 전설 >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산에서 부터 부산의 금정산을 거쳐 다대포 몰운대까지 뻗어 내리는 낙동정맥과 지리산에서 김해의 분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줄기따라 형성된 산과 하천, 지명 등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 낙동강 유역의 민요 >

낙동강 유역의 기본적인 민요 중에서 노동요인 경상도 모노래는 주고 받는 교창식 가락으로서 경상도 전지역과 충청, 전라까지 영향을 미쳤다, 모심기 노래 중 상주 공갈못의 연밥따기 민요인 채련요는 전국에 널리 알려진 가락이다. 그리고 정초에 마을마다 한해의 안녕과 행운을 비는 지신풀이도 낙동강유역과 충청, 전라도에 까지 널리 퍼져있다.

< 구포대리 지신밟기 >

구포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구포대리 지신 밟기는 정월 초 이튿날 부터 정월대보름까지 행해 지던 민속놀이로서 잡귀 잡신을 몰아내고 각 가정의 안가태평과 무병장수. 풍농. 풍어를 기원하던 마을사람들 전체의 놀이였다.

정초에 액을 막아야 일년 동안의 평온함을 누릴 수 있다는 토속신앙에서 비롯되었으며, 원형12마당을 전승.보존하여 부산시 민속축제에 참가하여 발표되었다.

 < 정월 뱃고사 >

정월 뱃고사는 뱃기를 모두 달고 먼저 배서낭에 제물을 올린 후 배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간단히 제물을 차려 놓고 절하는 것이다. 용골 앉힐 때는 선주와 도목수가 배의 건조작업이 순조롭기를 비는 고사를 지내고 진수할 때는 무당굿을 하는 예가 많다. 무당은 용왕굿과 배서낭굿을 하고 배서낭(또는 배성주)의 신체를 모셔 놓는다.

흉어 때에는 서낭기를 새 것으로 다시 만들어 달고 해뜰 무렵에 고사를 지낸다.

<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

매년 정월 대보름날 낙동강변에서 펼치는 달맞이 행사는 우리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것으로 주민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다. 산에가서 청송 솔가지를 베어다가 주로 강변의 언덕 위에나 논 가운데에 짚단을 걷어 옆에 세워 불을 붙인다. 이때 불을 향해 '오에 달집아'라고 외친다.

달집에 최초로 불을 붙이면 장가를 가고 득남을 한다고 해 이를 달집총각이라 부르며 달집에 콩을 볶아 먹으면 1년동안 이를 앓지 않고, 보름달 아래 다리를 밟으면 다릿병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 당산나무와 당산제 >

낙동강 유역에서는 마을마다 당산나무가 있다. 유역 주민의 민속신앙으로 옛날 낙동강의 홍수로 인한 재해 예방과 마을의 안녕과 풍년, 풍어를 비는 당산제가 해마다 정초에 거행되어 왔고 지금도 그 유습이 남아있다.

강 유역의 당산나무는 팽나무, 느티나무, 회나무, 왕버드나무 등이 주를 이루는데 수백년의 풍상을 견딘 믿음의 상징으로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 낙동강 하구지역 풍어제 >

낙동강하구지역은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와의 화해는 절대절명의 일이었으므로 풍어제가 치루어 졌다.

< 감동진 별신굿 >

낙동강 수로교통의 출발지였던 구포지역에 나루터의 이름은 감동진이다.

감동이란 지명은 신의 뜻을 내포하고 있어 민속적 내력이 있는 고장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구포지역에 전해오는 민속의식이 별신굿이다. 구포에서는 매년 혹은 격년으로 별신굿을 지낸다고 되어있다.

< 투사물류 >

끝이 날카로운 도구를 직접 대상물을 향해 던지거나 쏘아서 잡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법은 하천이나 강에서 자라나 연어를 잡을 때 사용하는 창류나 연안에서 개불을 대상으로 하는 걸이류의 방법이 있다.

< 쪽지그물 >

손잡이가 길고 모양이 국자처럼 생긴 그물, 가운데가 깊은 주머니형의 그물에 입구를 둥글린 나무테로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고정시키고 옆에 수직으로 긴 손잡이를 부착한 입구일정어구이다. 크기는 일정치 않으며 용도에 따라서 그물의 크기나 자루의 길이를 달리 했다. 용도는 낚은 고기를 떠 올리거나, 멸치나 기타 작은 잡어를 떠 올린다.

< 반 두 >

두 개의 긴 작대기 사이에 너비 1.5m, 길이 5m쯤 되는 그물을 위는 좁고 아래는 조금 넓게 잡아매며 아랫도리에 작은 납덩어리를 달아서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다. 두 사람이 각기 한 쪽씩 쥐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기를 가두어 잡거나 한 사람이 물이 흐르는 아래쪽에 이것을 벌리고 서 있고 다른 한사람이 상류에서 고기를 몰아 내려오기도 한다.

< 새우조리 >

큰 저수지나 개울에 서식하는 토하라고 부르는 민물새우를 잡는데 사용하는 어구로 해장죽을 가늘게 쪼개어 걸었으며 손잡이는 둥글게 만들어 따로 부착하여 물속의 작은 토하를 걸러내어 잡는다.

 

< 뱀장어 대롱 >

뱀장어가 강이나 둑에 숨어 살 때 근처에 갖다두면 구멍을 찾아 들어간다. 구멍안에 미끼를 넣어 두는 경우도 있다.

왼쪽부터 보쌈. 피리통. 통발. 대벅수 

< 대벅수 >

작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로 윗 쪽의 구멍을 풀이나 천으로 막고 된장이나 밥알을 통안에 넣은 다음 물속에 담가 놓으면 물고기가 꼬여들어 잡히게 된다.

< 통발 >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서식하거나 유영력이 크지 않으면서 미끼에 대한 반응이 민감한 생물을 대상으로 나무, 철사 등으로 된 여러가지 형태의 고정틀, 또는 고정된 틀 대신에 테를 이용하여 어구의 모양을 유지한 것에 그물감이나 철망 또는 나무넝쿨 등을 씌우고 윗면 또는 옆면에 1~4개의 입구를 설치한 어구를 부설하여 대상생물을 잡는다.

 < 가 리 >

대나무를 위는 좁고 아래는 벌어지도록 둥글게 모아 서너 군데에 새끼로 띠를 둘러 엮은 것으로 위쪽에는 손에 쥐기 편하도록 짚을 둘러놓았다. 물 속에 가리를 내려 꽂아 그 안에 갇힌 물고기를 윗쪽으로 손을 넣어 잡아낸다.

< 좽이 (투망) >

손잡이가 달린 원뿔형의 그물을 던져 대상 생물의 위에서 펼쳐 지면서 덮어 씌워 잡는 것으로 비교적 수심이 얕은 하천이나 강 또는 바닷가에서 주로 유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물의 아래 깃에 포켓을 만들거나 그물에 주름을 많이 주어 고기를 포켓이나 그물에 얽히게 하여 잡는다. 즉, 발돌을 그물의 아래 깃에다 골로루 달고 그물을 펼쳐서 대상물 위에 던져 대상물을 둘러 씌운 후 그물을 당겨 어획을 완료한다. 보통은 직경이 2~3m이나 큰 것은 5~6m에 달하는 것도 있다.

< 낙동강유역의 전통음식 >

- 울진 : 식해모듬. 매실장아찌. 매실정과. 대게찜

- 안동 : 건진국수. 안동식혜. 헛제사밥

- 의성 : 마늘산적. 마늘고추장

- 구미 : 화전. 애탕국

- 대구 : 대구육개장. 동안갈비찜. 대구따로국밥

- 진주 : 삼계탕. 진주비빔밥

- 마산 : 복국. 아구찜

- 부산 광역시 : 재첩국. 동래파전. 산성막걸리. 장어구이. 오리불고기

'낙동강변 특산물'

낙동강하구지역의 북구 금곡동 동원나루터는 조선시대 일본과 교역을 하였던 수참역원이 설치되어 왜의 사절이 거쳐가는 곳으로 강변에는 요식점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곳 금곡동 낙동강 수계에서 잡힌 민물고기중 잉어회와 장어요리가 지역의 명물이 되었는데 특히 장어구이 요리는 부산의 7진미에 들만큼 맛이 일품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근래에까지 이러져 금곡동에는 장어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구지역 어업의 특산물로는 다대포를 중심으로 한 멸치, 가덕도의 숭어 하단에서부터 사상, 구포에 이르기까지의 재첩, 명지의 김 등은 지난 날 지역의 특산물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리고 식품의 특산물로는 일제 말기부터 구포지역을 중심으로 제분제면업이 태동하였고 8.15 광복을 전후하여 6.25 전쟁 등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생산된 구포국수는 대용식품으로서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여 전국에 알려진 명산품이 되었다.

< 낙동강변 의생활 >

낙동정맥을 끼고 흘러 내리는 낙동강유역은 예로부터 옷감의 재료인 삼을 생산하기에 알맞은 풍토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강 유역에는 비교적 바람이 적어 삼 재배에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바람의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삼 재배의 최적지로서 마포의 생산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낙동강 상류의 청송, 진보와 그 주변의 영해, 영덕 등지의 삼베가 유명했다. 이들 마포의 집산지가 경북 안동이며 안동포는 한산지방의 모시와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올이 굵고 색이 노래서 주로 여름옷과 상복으로 많이 쓰였다.

< 낙동강 하구지역 주생활 >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지역 삼각주 연안의 주거시설은 일반농촌과 달리 홍수와 해일에 의한 침수를 방지하기 위한 어촌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 규모는 농촌과 달리 비교적 소규모이며 헛간 등 부속건물이 적으며 특히 마당이 좁았다.

- 지붕의 재료는 농촌의 짚이나 억새풀의 경우와 달리 강변 및 해변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고 보존이 월등한 갈쇠가 지배적이었다.

- 특히 하중도의 경우 축담이 필수적이며 비바람이 강하여 칼로 엮어 방사, 방풍용 '바재'를 둘러 쳤는데 이러한 관습 때문에 시멘트 생산 후 시멘트 벽을 둘러쳤다.

- 가옥의 기둥은 Y자형 나무를 썼는데 이는 홍수 시 침수에 대비, 지붕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 장독대도 침수에 대비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였다.

퍼즐도 맞춰보고.

탁본도 찍어보고.

통발도 제작하고

배도 제작하고

고등어 손질도 하고

< 삼세조창과 나루터 >

조선시대 낙동강 뱃길의 물목이었던 구포 감동진 나루는 강변언덕위에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들인 곡류 등 삼세 물량을 보관하던 감동창이 들어서면서 크게 번창하였다.

< 구포장터(어물전) >

감동창과 감동진 나루를 배경으로 장이 섰던 구포 감동장은 강변의 어물전에서 부터 안쪽 한마당 장터까지 장날(3일 ,8일)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 낙동강 하구지역 최대의 장터였다.

< 보부상 >

낙동강에는 보부상을 위한 상선이 따로 떴다. 배는 화원, 상주, 안동까지 올라갔다. 구포 감동진 나루에서는 역원이 설치돼 서울로 가는 왜사신의 접대와 교역을 관장했고 옛날 샛강이 있던 덕천동의 성산 앞에 밀무역을 단속하는 기찰이 설치되어 구법진 나루가 생겨났다.

낙동강어촌민속실에서 영특이 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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