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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공연.전시.축제/국립경주박물관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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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년 전 지중해 지역에서 탄생한 유리는 기원전 1세기 동지중해 지역에서 대롱불기라는 혁신적 기법이 개발되어 로마제국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2020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 특별전시관

 

이번특별전은 신라 사람들이 특별히 아끼고 사랑한 유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유리의 전반적 흐름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한국고대 유리를 주제로 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로, 철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리제품 18,000여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품에는 경주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황 모양 유리병(국보 제 193호)을 비롯한 국보 3건과 보물 8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국립경주박물관]

 

 

 

 

 

< 유리, 인류 최고의 발명품 >

 

유리는 우연한 발견과 혁신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유리그릇은 기원전 1,500년경 등장하며, 청동기와 토기제작방법을 응용한 코어성형 기법이나 주조성형 기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대 한국으로 들어온 유리'

 

한국에서 유리는 언제 출현했을까요?

청동기시대 유적인 부여 송국리와 보령 평라리 출토 유리가 거론되고 있기는 하나, 발견 경위와 출토 위치의 문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주변 지역의 사례 등을 들어 기원전 5세기 이전 한반도 유리구슬의 존재를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2세기 한반도 서남부지역 초기철기시대 무덤 유적들에서 출토되는 유리제 대롱구슬의 등장을 그 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유적들에서 출토된 유리는 성분분석 결과 납-바륨 유리로 확인되었는데, 납-바륨 유리는 기원전 4~5세기 중국에서 등장하여 전국시대에 유행합니다.

또한 유리와 함께 출토되는 유물들은 한국식 동겸문화의 전형적 유물에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 철기의 영향을 받은 쇠도끼, 쇠낫, 쇠손칼 등이 더해지는 양상으로, 우리나라 유리의 출현은 중국 철기문화와 결합되어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유리의 성분 >

 

유리의 성분은 사용된 원료의 역할에 따라 주제, 융제, 안정제와 착색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주제는 유리의 뼈대 역할을 하는 산화규소 성분으로 주로 모래나 석영광물에서 얻습니다.

유리의 녹는 온도를 낮춰주는 융제는 식물을 태운 재, 내트론, 초석, 납을 사용했습니다.

내트론은 동지중해 연안에서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후 800년까지 사용했으며, 포타쉬함량이 높은 식물재는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사용했습니다.

 

 

 

 

 

< 보석보다 빛나는 유리 >

 

유리는 투명하게 빛나는 다양한 색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상감 유리구슬은 지중해나 서아시아. 중국 등에서도 다수 확인되는 것으로, 고대 한반도에서는 신라 능묘를 중심으로 출토됩니다.

특히 이국적인 인물과 동물, 식물을 표현한 모자이크 유리 조각을 함께 녹여 만든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보물634호)에서는 장인의 탁월한 기술과 감각이 느껴집니다. 

 

 

 

 

 

신라 능묘 출토 유리그릇 재현품

 

 

 

 

 

 

< 신라 사찰의 유리 >

 

불교 유입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진귀한 물건으로 인식되었던 유리는 불교문화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며 종교적 상징성을 더해갔습니다.

불교에서 유리는 귀한 보석을 가리키는 칠보의 하나이며, 유리보주는 사리에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투명한 유리용기는 사리가 오색 광명을 발하는 신이를 관찰하기에 이상적 재질입니다.

신라사찰에서 발견된 유리는 그 진귀함과 특이한 재질로 인해 부여된 종교적 역할과 기능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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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층 유리구슬 / 상감 유리구슬

 

 

 

 

 

< 신라 마립간의 유리구슬 >

 

5~6세기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왕을 마립간으로 부르던 시기에 축조되었는데, 이러한 무덤에서는 엄청남 양의 유리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리구슬은 주로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 그리고 월성로 고분군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에서는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유리구슬이 출토되었습니다.

 

 

 

 

 

유리구슬

 

 

 

 

 

유리구슬 가슴꾸미개

 

 

 

 

 

< 수정과 마노 > 

 

삼한 지역에서는 수정과 마노가 유리와 결합되어 다양한 장신구로 만들어지고 유행합니다.

특히, 변. 진한 지역에서 2세기 후반 덧널무덤 단계에 이르면 수정제 장신구가 대량으로 제작되고 대형 무덤에 부장됩니다.

 

 

 

 

 

< 유리사리기  (국보123호) >

 

통일신라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우리나라 사리병 가운데 조형미가 돋보이는 명품입니다.

길고 날씬한 목과 둥근 동체의 조화가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금동판 위에 낮은 단을 올리고 그 위에 활짝 핀 연꽃을 더해 대좌를 만들었습니다. 마개는 금색의 꽃봉오리 모양입니다.

 

 

 

 

 

< 대롱불기 기법의 지중해 전파 >

 

아우구스투스 (기원전 63년~기원후 14년) 치세에 로마의 경제가 팽창하면서 제국 내 그릇 시장의 수요도 커집니다.

기존의 유리그릇 제작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팽창된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유리그릇보다 빨리 제작해야했고 이에 대롱불기 기법이 채용되었습니다.

 

 

 

 

 

유리 제작의 대혁신, 대롱불기 기법

 

지금의 레바논 지역인 시돈의 유리 공방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대롱불기, 틀불기 기법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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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 유리의 탄생 >

 

유리의 주성분인 산화규소의 녹는점은 1,710도~1,1730도에 이릅니다.

고대에는 이 정도의 온도를 올리기 어려웠기에 융제를 넣어 유리의 액체화 온도를 1150도 정도로 낮춰야 했습니다.

 

 

 

 

 

< 인도-태평양 유리구슬의 대량 생산 >

 

인도 동남쪽 해안에서 라다기법으로 소형 단색 유리구슬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라다는 속이 빈 금속막대로 이를 사용하여 유리관을 대량 생산한 후 개개의 유리관을 잘라 구슬을 만듭니다.

 

 

 

 

 

< 한국 최고의 유리 >

 

부여 송국리유적 독널무덤에서 확인된 납 유리 [납 22% 이상 함유]인 상감유리와 보령 평라리유적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포타쉬 유리인 유리구슬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리' 논쟁의 주인공입니다.

그 이유는 송국리유적에서 확인된 유리는 도굴되었다가 압수된 것이며, 평라리유적의 유리구슬은 매장주체부가 아닌 묘역부분에서 발견된 것이어서 청동기시대 유리구슬로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유리제 대롱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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