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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공연.전시.축제/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4전시실 - 가야사람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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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의하면 가야사람들은 누에치기,옷감,제작,오곡재배를 하였다고 합니다. 왕은 궁성에서 생활하였으며,김해 봉황대와 고령 지산동에서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주로 움집이나 초가에서 살았고, 이층으로 다락집을 만들었습니다. 가야사람들은 주로 논. 밭농사로 식량을 얻었고, 고기잡이나 조개류 채집도 여전히 중요한 생산활동이었습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안내서)

4전시실 내부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점치는 뼈. 복골/고대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점을 치는 행위에 사용하는 뼈를 복골이라고한다.

가야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가야가 성립될 당시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역사책인 [삼국지] 위서.동이전.변진조의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과 벼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라는 기록도 당시 가야에 농사가 활발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발굴로 오곡과 복숭아같은 과일이나 채소도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에 소..돼지를 비롯한 가축,사냥한 멧돼지.사슴, 야생에서 채집한 밤.도토리, 강이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조개 등도 가야 사람들의 주된먹거리 였습니다. 이러한 음식은 나무나 흙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 먹었으며, 저습지유적에서 나무그릇이나 농기구가 실제로 발견됩니다.

'다락집을 짓다'

가야의 집은 발굴한 집터와 집모양의 토기로 복원할 수 있으며, 주로 구덩이를 파서 만든 움집과 다락집이 있습니다. 움집은 보통 사람들의 살림집으로 부뚜막과 온돌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다락집은 높은 기둥을 세워 만든 이층집으로, 짐승과 습기로부터 곡물을 보호하는 창고이자 지배자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출토된 집모양 토기는 다락집 형태를 잘보여주며, 경북 현풍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집모양 토기는 고양이와 쥐가 표현되어 있어 가야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부산 기장군 용수동유적과 창원 석동유적에서 완전한 모습의 집모양토기가 출토되어 주목받았습니다.

맞배지붕에 정면2칸, 축면2칸의 9개 기둥을 갖춘 이층 다락집 형태의 집입니다. 비록 토기를 굽다가 기둥이 뒤틀어버렸지만, 건물의 벽체에 가는 선으로 다양한 무늬를 새겨넣었고, 정면에는 출입시설인 문을 표현하였습니다. 지붕 가운데에 액체를 넣는 곳, 문이 있는 앞쪽에는 따르는 곳이 있기 때문에 액체를 담거나 따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내부 용량은 350ml 정도입니다. 현재까지 집모양토기는 국내에 20여 졈만 확인된 중요한 자료이며, 경주 사라리. 창원 다호리. 부산 기장군 용수리유적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출토지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2005년에 발굴된 회현리조개더미에서 민무늬토기에서 도질토기에 이르는 수많은 토기와 외래계토기,골각기 970점,복골101점, 동물종류를 알 수 있는 동물뼈 5,065점, 40종의 패각류, 소량의 옥구슬과 철제품,석기,송풍관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바닷가 마을 예안리 사람들은 앞니를 일부러 뽑거나, 피부에 문신을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쇠호미.쇠따비.쇠스랑.쇠가래.삽날.쇠끌.쇠도끼.

옛 김해사람의 생활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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