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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시민의 종 . 춤추는 시계탑 김해 시민의 종. 2009. 이천년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 피웠던 철의 왕국 김해시는 지난 2009년 11월 철의 왕국 가야의 자긍심을 잇고 시민의 하나 된 힘을 모아 애향심을 높임은 물론 우리 시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김해 시민의 종을 건립했다. 매년 제야의 종 타종식 행사를 통해 희망찬 새해의 시작을 알려 주고 있는 김해 시민의 종은 김해 시민들의 행복과 희망을 담은 촘24억4000여만 원의 시민 성금으로 건립되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종각 내부에는 성금을 기탁하신 분들의 마음을 기려 이름이 새겨져있다. 종각의 형태는 가야 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하는 의미로 가야 토기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하여 형상화 하였으며 종각의 상부에는 기도하는 ..
국립김해박물관 (동영상) [아픈 역사 속에서 밝혀진 사실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였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한반도 내 수많은 유적을 발굴하였습니다. 근대적인 고고학조사방법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목적은 식민지 통치의 명분을 찾고, 한민족의 우수성을 훼손하고, 임나일본부같은 잘못된 고대사의 증거를 찾기 위해 한반도 각 지역을 조사하였습니다. 가야유적 가운데 김해조개더미.함안 말이산.고령 지산동. 창녕 교동유적을 발굴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학문적 의도가 아니었기때문에 발굴과정이나 출토유물에 대한 기록이 허술하였습니다. 이 때 이루어진 조사는 오히려 한국 고대사와 가야사를 연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 손으로 조금씩 가야유적을 다시 발굴하면서, 가야에 대한 실마리들이 하나 둘씩 풀어지고 역사에 대한 실마리들이 ..
가야전사들의 용맹한 모습을 형상화한 '기마민족상징조형물' [기마민족 상징조형물] 경남 김해 박물관역 근처 산책로에 전시되 있는 가야전사들의 조형물이다. 이 기마민족 상징조형물은 국보 제275호로 지정된 기마인물형 토기와 가야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참고로 하여 청동주물로 제작한 것으로 가야의 우수한 철기문화와 강력한 군사력을 표현하고 가야인의 용맹하고 웅장한 모습을 생동감있게 형상화하여 김해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대성동고분군 야외전시관' 🏛금관가야문화를 이해하는데 다양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곳!🎠 야외전시관은 대성동고분군에서 최초의 왕묘라 할 수 있는 29호 목곽묘와 이것을 파괴하면서 설치된 39호 목곽묘를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두 목곽묘는 100여 년 정도의 시기 차가 있어 무덤의 변화상을 서로 비교하여 알 수 있고, 도굴을 당하지 않은 무덤이어서 부장품의 배치 상태를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대성동고분박물관] 야외전시관으로 가볼께요 대성동 고분군 야외전시관 종합안내도 점프 한번 해보고 씩씩하게 오르기 시작하고 오르고 또 오르고 에고 숨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인돌'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인돌은 애구지 구릉 중심부의 평탄한 면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다. 무덤구덩이를 2단으로 파고 그 구덩이에 돌널을 설치하였다. 8~9단으로 쌓아 올린 ..
👑'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 무덤👑 '대성동고분군' 비밀의 문이 열렸다 [ 박물관소개 ] 김해시는 2001년부터 가야문화환경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대성동고분군을 정비하고 2003년 8월 대성동고분박물관을 개관하였습니다. 이웃한 국립김해박물관이 가야 전체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면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의 무덤인 대성동고분군을 대상으로 하여 보다 특화된 전시를 구성하였습니다. 이후 대성동고분군에 대한 학술발굴조사가 꾸준히 진행된 결과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최신 발굴 자료들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열린 박물관으로 다가가고자 노후화된 박물관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2017년 5월 재개관 하였습니다. [ 관람안내 ] 관람시간 - 오전9시~오후6시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가능 휴관일 - 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 ..
국립김해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코스는 문화상품점. 출구를 향한 산책로. 철광석과 숯을 이미지화 한 검은색 벽돌을 사용하여 철의 왕국 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것으로, 건축가 장세양의 유작입니다. 박물관에 사용된 내후성 강판은 포스코에서 개발한 특수한 재질입니다. 처음에는 황색이며, 5~10년 정도 지나면 강판이 산화되면서 표면에 녹이 슬어 짙은 갈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긴 녹이 보호피막이 되어 남아 있는 내부의 강판을 영구적으로 보호하게 됩니다. 어린이전용구역은 처음봅니다. 스쿨버스존인가봐요. 집에 가자~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영특이 였습니다. 끝!
국립김해박물관 - '역사 속에 빛나던 가야 사람들' [가야라는 이름으로]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전, 가야는 고구려.백제.신라와 함께 한반도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야는 삼국의 역사에 가려진 채 신비로운, 때로는 잊혀진 왕국으로 묻혀버렸습니다. 가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서부터 조선의 [아방강역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기록에 그 존재와 실체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적의 발굴로 가야가 삼국에 뒤지지 않는 우수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중국.일본 등과 활발한 대외교류를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잊혀진 그들의 한걸음 한걸음을 새롭게 한 자리에 모아 빛나는 이름, 가야로 제자리를 찾아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가야라는 이름 아래 빛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
국립김해박물관 - 실감콘텐츠 '가야의 전투' 전설 속의 황세 장군이 되어 신라군과의 전투에 참여해 보세요. 실감콘텐츠 '가야의 전투'는 상설전시실 1층에 위치하고있습니다. 꼭 체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전설 속의 가야]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이야기. 가락국 제9대 겸지왕 때 황정승과 출정승이 살았습니다. 둘은 절친한 사이로 자식이 태어나면 혼인시키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황정승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세'라 하였고, 출정승은 딸을 낳아 이름을 '여의'라 지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고 세력이 강했던 출정승은 가난한 황정승에게 딸을 주기 아까워 여의를 남장해 키웠습니다. 황세와 여의는 어릴 적부터 학문과 무예를 함께 익히며 죽마고우로 자랐습니다. 성인이 된 여의는 어쩔 수 없이 숨겨왔던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들은 서로간에 사모의 정을 가졌던지라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결혼할 날을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때 가야는..
국립김해박물관 7전시실 - 해상왕국,가야 가야는 일찍부터 풍부하게 생산된 철을 매개로 한 교역을 위해 다양한 육로나 해로가 발달하였으며, 해상무역이 가장 활발하였습니다. 일본(왜)과는 쓰시마를 거쳐 일본 규슈로 연결하는 항로가 있었고 낙랑.대방.마한(백제)과는 남해와 서해, 동예와는 동해를 이용하였습니다. 가야 배의 모습은 다양한 배모양 토기로 알 수 있으며, 김해 봉황동유적에서 가야 배의 조각으로 보이는 목제품이 발견되어 주목 받았습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 ) 김해 봉황동 119-1번지 유적에서 노와 배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는 목제품을 확인하였습니다. 금관가야의 활발한 해상교류와 관련된 운송수단인 배를 실제로 확인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이 배조각은 노와 돌로 만든 닻과 발견되었으며, 배모양 토기와 함께 가야의 배구조와 제작기술 복원에 중요한..
국립김해박물관 6전시실 - 철의왕국, 가야 철은 청동보다 단단하고 예리하기 때문에 실용성이 큰 재질입니다. 우리나라 서북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유적에서 중국 연나라(B.C 323~222년) 화폐인 명도전과 철제품이 출토되어 이 시기에 철기문화가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성장기반은 '철'이었고, 철의 보급은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철은 화폐처럼 사용되었으며, 특히 덩이쇠는 정량화.규격화되어 교역의 매개물로 사용되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 가야의 성장 기반은 '철' 이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철생산과 철제품의 보급은 사회를 변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철은 청동보다 단단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기때문에 실용성이 큰 재질입니다 '쇠로 만든 칼로 가야를 지키다' 가야는 풍부한 철 생산지와 유리한 교역 환경때문에, 주변나..
국립김해박물관 5전시실 - 부드럽고 아름다운 가야토기. 가야토기는 도질토기와 연질토기로 나누어집니다. 도질토기는 저장.의례.장식용으로, 연질토기는 일상생활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야토기는 가야산 이남의 낙동강 서쪽 지역에서 호남 동쪽 지역까지이며, 3세기대부터 6세기대까지 제작되었습니다. 세련된 곡선미가 가야토기는 각 나라마다 세부적인 특징을 가지고있고, 그 제작기술은 일본의 고대토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안내서) 5전시실 내부 5전시실 내부 단단한 토기를 구워내는 가마/ 가야토기는 굴가마에서 구워집니다. 굴가마는 구릉 사면에 굴을 파서 만든 지하식과 경사면을 약간 파고 들어가 지상에 천장을 만든 반지하식이 있습니다, 가마는 아궁이, 땔감을 넣는 연소부, 토기를 두는 소성부, 화기와 연기를 배출하는 연도로 구성됩니다. 가마는 다량의 점토와..
국립김해박물관 4전시실 - 가야사람들의 삶. 삼국지에 의하면 가야사람들은 누에치기,옷감,제작,오곡재배를 하였다고 합니다. 왕은 궁성에서 생활하였으며,김해 봉황대와 고령 지산동에서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주로 움집이나 초가에서 살았고, 이층으로 다락집을 만들었습니다. 가야사람들은 주로 논. 밭농사로 식량을 얻었고, 고기잡이나 조개류 채집도 여전히 중요한 생산활동이었습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안내서) 4전시실 내부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점치는 뼈. 복골/고대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점을 치는 행위에 사용하는 뼈를 복골이라고한다. 가야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가야가 성립될 당시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역사책인 [삼국지] 위서.동이전.변진조의 '토지가..
국립김해박물관 3전시실 - 가야의 성립과 발전. 가야는 낙동강 서쪽의 변한 지역에 있었던 여러세력의 집단이 성장한 나라로, 가야.가라.가량.가락.임나등 명칭이 다양합니다. 가야영역은 오늘날의 낙동강 서쪽의 영남지역이 중심이며, 빠른시기의 영역은 낙동강 동쪽일부 지역까지입니다. 가야는 백제.신라와 패권을 다투었지만,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562년)되면서 역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안내서) 변한12국 - 소가야. 비화가야.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3전시실 내부 3전시실 내부 뚜껑없는 긴목항아리.그릇받침 금동관 (보물 제1922호) / 가야의 금동관은 화려한 신라의 금관과는 달리 단순한 나뭇가지모양입니다. '산'자 모양의 신라금관 초기형태처럼 보이는데 , 금못으로 관테와 세움장식을 고정시키는 제작기법은 유사합니다. 하지만 신..
국립김해박물관 2전시실 - 가야의 여명 가야와 신라가 성립하기 전 낙동강을 경계로 동쪽에 진한, 서쪽에 변한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무렵 덧띠토기와 철기를 일부 지역에서 먼저 사용하였습니다. 고조선이 멸망(기원전 108년)하고, 철을 다루는 우수한 기술이 영남지방으로 확대되어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먼저 철기를 일반적으로 사용하였고, 투박한 적갈색의 민무늬토기 대신 밀폐된 토기가마에서 고온으로 구운 회백색 와질토기가 등장하고, 무덤도 고인돌에서 널무덤과 덧널무덤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풍부한 철과 철제품을 바탕으로 남해안 및 중국.일본 등 주변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가야로 발전합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안내서) 다호리유적은 1988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2012년까지 모두 열한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호묘에서 출토..
국립김해박물관 1전시실 - 낙동강 하류역의 선사문화. 낙동강 하류역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며, 주로 작은 석기류가 출토됩니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토기와 간석기가 출현하고 초보적인 농사를 시작합니다. 대규모 조개더미유적에서 각종조개류.동물뼈.견과류.토기 등 먹거리와 생활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기시대는 청동기와 간석기.민무늬토기를 사용하고, 본격적인 논농사를 지었으며, 마을과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었습니다. (출처-국립김해박물관안내서)
국립김해박물관 가는길.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김해시 구지봉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위해 1998년 7월29일 개관 되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의 문화재를 집약 전시하고 있으며, 부산.경남 지역의 선사시대 문화와 가야의 성장 기반이 된 변한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시간] - 평일 / 오전9시-오후5시 - 토.일.공휴일 / 오전9시-오후7시. - 4월~10월 : 토요일 야간 개관(오후9시까지). - 방문전에 인터넷에서 예약제로 운영중이나 전화로 문의해보니 당일방문가능하답니다. 사이트에서 예약마감이라도 전 화로 문의해보시면 됩니다. -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가능. - 휴관일 : 국립김해박물관 연중 휴관일은 매년 1월1일과 설날,추석,매주 월요일 입니다. (단, 월요일이 공휴일..
🍧더운 날씨에 놀러 갔어요🍨 "부산실내빙상장"🍦 너무 추웠어요^^ 부산 살기 2년 계획하고 이사 왔어요 하루하루 습하고 더운 날씨에 주말에 시원한 곳을 찾아갔어요^^ 날씨가 더워서 찾아간 곳은 바로바로 이곳입니다~ 2005년 부산 최초의 국제 규격의 실내 빙상장 "부산실내빙상장" 너무 한적하고 주말이라 휴무인가 했네요 조금의 기대를 안고 빠른 걸음으로 갔어요 '스케이트를 타실 분만 입장료 발급받으세요' 라고 쓰여있네요 분위기 보고 탈 수 있으면 타는 거죠 머 어려워요!! 일단 입장합니다 한번 쓰윽~~ 읽어보고 입장합니다 한산해서 걱정했는데 스케이팅을 하고 계셨어요 선수 훈련받는 아이들도 보이고 회전 뱅그르르~~ 하시는 분들도 있고 스피드스케이팅하시는 분들도 보이고 오늘 기분 너무 시원하고 좋네요 빙상장을 ..
뜨개질.
도자기.
🏖해운대에서 내가 제일 괘안지🏝 내 애기 하나보다 ^^ 꽃길만 걷고 싶다 계속 공중 부양하는 이 남자 저러고 걸어갈 건가 보다 갑분 아줌마갬성모드 저거 타자고 조른다 몇만 명(?) 대기 중인 관계로 못 탔다 누가 봐도 부산 인디 홍콩처럼 찍어달란다 이날 희귀한(?) 수영복들을 조금 봤다 또 생각나네. ㅠㅠ;; 들어가고 싶나 보다 뒤에서 밀어볼까도 생각해봤다^^;; 또 폼 잡는다 유람선 시간이 안 맞아서 저것도 못 탔다 멀 자랑하고 싶은 건가 손톱 정리 잘됐다 해운대에서 영트기였습니다 끝!
해운대 모래작품전시회 해운대 샌드 / 쥬라기월드.
부산배달음식 다양하게 눈으로 맛보세요 최초의 음식 배달 서비스는 한국의 냉면으로 1768년 기록되었다. 효종갱(曉鐘羹) 또한 1800년대에 양반을 대상으로 배달되기도 했다. 음식 배달과 케이터링을 위한 광고는 1906년 신문에 처음 등장하였다. (출처-위키백과) 효종갱(曉鍾羹)은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이며, 배추 속,콩나물, 쇠 갈빗대,해삼, 전복, 버섯 따위를 된장 푼 물에 종일 푹 고아 만든 해장국이다. 해삼과 전복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한 등급 더 업그레이드된 곰탕 또는 해장국이라고 보면 되며, 《해동 죽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출처-나무위키) 오돌뼈의신 / 오돌뼈매운맛. 계란말이 가마솥모둠순대 / 모듬순대 (고기. 김치. 땡초. 찰순대. 내장 포함). 떡볶이 한고집6선냉면 / 물냉면. 튀김만두. 코다리 회무침 오..
인형인줄.... 웅진플레이도시/인형인줄....앞에서 뛰어댕기던 나를 처다보드라...흐억!!
그냥집밥 제일 자신있는 깍두기 담그기 레시피는 내맘대로 요리에 소질이 있기는 한가봐요 날씨좋아서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 남편이 끓여준 콩나물국 진짜 개운하게 해장이 확실하게 됐다 몸보신 할겸 문어삼계탕 동태찌개 고등어조림 문어숙회 유부초밥
'구포만세거리' 구포장터 3.1만세운동에 관한 벽화를 볼수있는 장소. 구포만세운동은 1919년3월29일에 구포장터에서 있었던 1,200여명의 대규모 만세 운동이다. 김옥겸 선생 등 42명이 옥고를 치른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만세 운동이며, 의거의 주축이 주로 유림, 학생이었던 타 지역과 달리, 상인, 노동자 등 서민 대중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출처:지식백과] 부산구포역에서 구포시장으로 가는길에 구포만세길. 구포만세거리. 대한민국만세!!! 구포만세거리에서 영트기였습니다. 끝!
영특이와 영순이의 먹고 마시고 취하고 즐겁게 퐈이야~!
'한국만화박물관' 박물관이 만화스러운곳. 2001년 개관한 최초의 만화전문 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와 신라의 궁궐건축🏰 월지는 궁궐 안의 인공연못으로 정원 및 연회장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인 월지는 남서쪽 둘레가 직선인데 반해 북동쪽은 매우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되어 있어, 어느 곳에서도 못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없습니다. 이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각이라는 뜻의 임해전이라는 건물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월지를 바다처럼 보이도록 조성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못 안에는 3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조성하여 더욱 바다와 같은 느낌을 들게 하였습니다. 월지 평면 모습 월지는 궁궐 안의 인공 연못으로 정원 및 연회장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동쪽에는 언덕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자연을 조성하고 서쪽에는 축대를 쌓고 건물을 배치하였습니다. 월지..
국립경주박물관(동영상)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4,500년 전 지중해 지역에서 탄생한 유리는 기원전 1세기 동지중해 지역에서 대롱불기라는 혁신적 기법이 개발되어 로마제국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2020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 특별전시관 이번특별전은 신라 사람들이 특별히 아끼고 사랑한 유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유리의 전반적 흐름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한국고대 유리를 주제로 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로, 철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리제품 18,000여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품에는 경주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황 모양 유리병(국보 제 193호)을 비롯한 국보 3건과 보물 8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국립경주박물관] 유리는 우연한 발견과 혁신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유리그릇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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